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흑해 그리스인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아시리아 터키.png]] 1차대전 후 제안된 폰토스 공화국 (갈색) 기원전 700년경부터 서기 1923년까지 상당수의 그리스인들이 흑해 일대에 거주했으며 오늘날에도 일정 수의 흑해 그리스인들이 조지아 서부 흑해 해안지역 등에 잔존하며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의 흑해 진출은 기원전 8세기부터 시작됐을 정도로 유서 깊다. [[밀레투스]]에서 출발한 그리스인 개척자들이 흑해에 식민도시를 건설한 것을 시작으로, 고대 [[초르노젬]](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일대) 지역의 밀을 수입하고 대신 그리스에서 생산되던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수출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크림 반도 일대의 [[보스포루스 왕국]] 등을 건설하였으나, 흑해 일대에 [[고트족]], [[아랍인]], [[튀르크]] 등이 주도권을 차지하면서 비주류 민족으로 밀려났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개종 이후 흑해 일대의 그리스인들도 [[그리스 정교회]]를 정체성으로 삼으면서,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흑해의 무슬림들과는 다른 [[종교적 소수자]]로서의 흑해 그리스인의 정체성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이 아나톨리아 동북부 지방을 병합하면서 흑해 그리스인 대다수가 [[오스만 제국]]의 신민이 되었다. 이들 중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오스만인과 동화된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그리스 정교회를 비롯한 그리스인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한 경우도 많았다. 다만 아나톨리아 서부 도시지역의 부유했던 그리스인들과 다르게 흑해 그리스인들은 주로 광업에 종사하긴 했지만 비교적 덜 부유한 편이었고,[* 이는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오스만인과 언어적으로 완전히 동화된 경우가 더 많았다. 일부는 스타브리오테스(σταυριώτες) 또는 크립토흐리스티아니(κρυπτοχριστιανοί)라 하여 표면상으로만 이슬람으로 개종한 경우도 있었는데, 19세기 들어 다시 기독교도로 환원하였다. 근대 러시아 제국이 캅카스 서부 지역으로 확장을 계속하자 [[체르케스인]] 등이 오스만 제국으로 탈주하는 것과 반대로 흑해 그리스인 상당수가 러시아 제국 영토로 자진해서 이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 상당수는 러시아 남부 지역이나 [[조지아]] 일대에 정착했다. >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대제|에까쩨리나 여제]] 통치기에 러시아 군대는 흑해연안까지 진출하여 [[오데사]]를 건설하고, 이곳에 그리스인들의 정착을 적극 권장하였으며, 이외에도 많은 그리스인들이 에까쩨리나 여제 통치기에 러시아 남부에 정착하였다. 이러한 역사를 거쳐 제정러시아에는 50만명이 넘는 그리스인들이 정착하였고, 이 가운데 현재의 러시아연방 지역에는 대략 15만-20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었다. 아울러 현재의 [[독립국가연합]]지역에 그리스인 공동체는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는데, 흑해와 [[아조프해]]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초기 정착이 시작되어 크림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19세기초에 당시에는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있었던 오늘날의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에 거주하고 있는 그리스인들의 조상들이 카프카즈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이후에는 오늘날 그루지아의 아드자리아와 [[압하지아|아브하지야]] 지역으로까지 이주가 확대되었는데, 노동 이민자들이 대부분이었다. >----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737843|KCI 등재논문 : 중앙아시아([[카자흐스탄]]) 유럽계 소수민족 집단의 형성과 변화(폴란드인, 그리스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